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 드 뤼지냥 (문단 편집) === [[예루살렘 왕국]]에서의 행적 === 이 시기 [[예루살렘 왕국]]의 국왕은 [[보두앵 4세]]였는데, 공교롭게도 나병 환자였던 까닭에 후계자를 놓고 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. 기가 망명한 시점에는 [[트리폴리 백작국|트리폴리]] 백작 레몽 3세[* 티베리아스(Tiberias) 또한 그의 영지였기 때문에(정확히는 그의 아내인 갈릴리 공작부인 에시바의 영지였다) '티베리아스의 레몽'이라고도 한다. 영화 [[킹덤 오브 헤븐]]에서 티베리아스는 영어 발음인 '타이베리어스'로 불린다. 레몽 3세의 배역은 [[제러미 아이언스]].]와 [[에데사 백작국|에데사]] 백작 보에몽이 연대하여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기에, 보두앵 4세는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1180년 기를 누이 [[시빌라]]와 혼인시켜 야파와 아스칼론의 백작으로 서임하였다. 그리고 1182년에는 섭정으로 임명하여 왕국의 전권을 맡겼다. 하지만 1183년, 당시 케락의 성주였던 [[르노 드 샤티용]]이 이슬람 상단을 공격하여 [[살라흐 앗 딘]]과 맺은 휴전조약을 파기했으며, 이에 [[살라딘]]이 케락을 포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.[*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발리앙이 포로로 잡힌 그 전투이다.] 이는 당시 예루살렘 왕국의 상황을 봐서는 매우 중대한 위기였으며, [[보두앵 4세]]가 직접 아픈 몸을 이끌고, 케락까지 원정을 가서 포위를 풀어야 했다. 하지만 이 와중에, 정작 섭정으로써 이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할 기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기 때문에[*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차피 살라딘이 원정군을 이끌고 오랜 포위전을 진행할 수는 없었을 것으므로, 기의 소극적 반응이 적절했다고 두둔하는 학자들도 있다.], 보두앵 4세는 분노와 동시에 기의 능력에 대해 의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. 결국 보두앵은 시빌라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인 [[보두앵 5세]]를 공동왕으로 세우고, 기의 섭정직을 박탈하였다. 더 나아가 시빌라와 기의 혼인도 파기하려 하였으나 공교롭게도 1185년 나병으로 숨을 거두면서 파혼은 없었던 일이 되었다. 게다가 [[보두앵 5세]]가 이듬해 사망하면서 그 뒤를 이어 시빌라가 왕위에 올랐다. 당시 예루살렘 왕국은 [[이벨린의 발리앙|발리앙]]의 양녀인 [[이사벨 1세(예루살렘 왕국)|이사벨]][* 시빌라의 이복동생인데, 이자벨의 어머니가 발리앙과 재혼을 했다.]과 시빌라의 다툼으로 왕위 계승 문제가 심각했다. 이사벨의 남편 옹프루아가 기 드 뤼지냥을 지지하자 발리앙-레몽 세력은 시빌라의 왕위 계승을 인정하는 대신 기와의 파혼을 조건으로 내걸며 타협을 시도했다. 시빌라는 이를 받아들여 순조롭게 여왕에 즉위하였으나, 여왕에 오르자마자 기를 다시 남편으로 사목하면서[* [[시오노 나나미]]조차 [[십자군 이야기]]에서 이 사실을 언급하면서 "시빌라는 기 드 뤼지냥의 얼굴에 반해 있었지만 기 드 뤼지냥에게 잘생긴 얼굴 빼고는 아무런 장점이라고는 없었다"고 깠다.] 기 드 뤼지냥은 예루살렘의 왕이 될 수 있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